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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체육

도산서원

  • 종 목 : 문화재자료 제3호
  • 분류|수량 : 건조물 | 1동
  • 시대|인물 : 조선후기 | 권득기, 권시
  • 소 재 지 : 서구 남선로 8
  • 지정일자 : 1989. 03. 18.

도산서원道山書院은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와 탄옹炭翁 권시權?를 배향하는데, 이 두사람은 부자지간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많은 후학들에게 유학을 강론하고 문인을 양성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1693년(숙종 19) 후학과 후손들이 이곳에 서원을 처음 지었으며 1711년에 사액을 받았으나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21년 제사를 지내는 단壇을 세우면서 복원이 시작되었다. 도산서원은 1921년에 복원이 시작되었으나 현재의 건물 대부분은 1960년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중건한 것이다.

도산서원은 크게 함덕사涵德祠가 있는 사당 구역과 강학과 숙소가 있던 강당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 구역에는 함덕사를 두고 주변을 담으로 둘러싸고 유정문이 설치되어 있다. 사당 북서편 한 단 낮은 곳 강당 구역에는 강당과 그 앞에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고 이를 담이 둘러싸고 있다.

함덕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정면의 1칸열은 툇간으로 하고 후면의 2칸열은 내부 공간에 위패를 모시고 있다. 기단은 화강석으로 잘 다듬어 가구식으로 만들고 각 칸 앞에 하나씩 3개의 계단을 두었다.

강당인 명교당을 중심으로 그 앞 좌우에 각각 동재時習齋와 서재止善齋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명교당은 1980년(단기 4293) 6월 17일 중건 상량을 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평면은 가운데 3칸통을 누마루로 하고 양 측면에 1칸통씩 온돌방을 두었다. 명교당의 기단은 화강석을 다듬어 높이 2자 정도로 쌓고 기단 정면에 1곳 계단을 두었다. 초석 역시 폭 1자 정도의 화강석을 방형으로 다듬어놓고 방주를 세웠다. 동재와 서재는 규모와 모양도 똑같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데 정면열은 반 칸 넓이로 툇마루를 두고 후열칸은 통으로 온돌을 두었다. 기단은 화강석을 다듬어 설치하고 방형초석에 방주를 세웠다. 규모는 작지만 고주를 하나 세운 1고주 5량집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