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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체육

마봉재보루

  • 종 목 : 문화재자료 제16호
  • 분류|수량 : 분묘 | 1기
  • 시대|인물 : 조선전기 | 김여온
  • 소 재 지 : 서구 괴곡동 산12
  • 지정일자 : 1989. 03. 18.

마봉재馬峯峙 보루堡壘는 대전의 갑천에 연하여 남북으로 뻗은 월평산지에 위치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전시 서구 내동 월평싸이클 경기장 서북쪽 표고 190m 구릉 정상에 해당된다. 보루의 북쪽 약 1.1㎞ 떨어진 곳에 월평산성이 자리하고 있어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마봉재 보루에서 다시 남쪽으로 2.3㎞ 지점에는 또 다른 보루인 도솔산 보루가 있다. 월평산성과 이들 두 보루는 그 길이가 약 3.4㎞에 이르는 남북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방어선은 대전 분지의 서쪽 계룡산지와 동쪽 계족산·식장산지 사이의 중간지대로서 대전을 관통하는 동서 방향의 교통로가 통과하는 지점이어서 그 전략적 전술적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마봉재 보루가 위치한 곳은 주변의 평지와 비교하면 약 100~150m 높은 곳이어서 갑천 서쪽은 물론 동쪽의 대전 구도심 지역을 조망하기 쉽다. 이러한 입지적 특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한 월평산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현재 마봉재 보루의 한가운데에 민묘가 조성되어 있고, 남북 방향으로는 등산로가 통과하고 있어 얼핏 보면 이곳이 보루 유적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등산로로 인해 표토 침식이 진행된 부분에는 30~40㎝ 크기의 석재로 구성된 석렬이 관찰되기도 하고, 토기편 등 유물이 흩어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보루의 규모는 직경 약 14m의 원형 평면이고, 둘레 길이 44m, 추정 면적 약 150㎡이다. 보루 남쪽의 등산로와 연결되는 지점에서 불탄 흙의 흔적이나 무문토기 및 백제토기 등이 수습되며, 동쪽 경사면에서는 석축 시설이 확인되기도 한다. 이로써 보면 마봉재 보루 지점은 삼국시대 이전 시기부터 사람들이 차지하여 썼을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의 무문토기는 아마도 청동기 시대 후기~초기철기시대 기간의 점토대토기문화와 관련될 것이다.

마봉재 보루는 월평산성 및 도솔산 보루와 함께 웅진·사비기 백제의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대전 지역은 475년 고구려에 의해 한성漢城이 함락된 이후 황망히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한때 고구려의 치하에 들었다. 그 당시의 사정은 월평산성 아래층 에서 출토한 고구려토기 등이 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 이후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다시 대전 지역을 차지한 것이 바로 웅진기 475~538년이며, 마봉재 보루는 바로 그 무렵 이후 만들어진 백제의 최전방 보루였다. 사비기538~660년에 들어와 계족산성을 비롯한 대전 분지 동쪽 산지에 신라 산성들이 만들어진 6세기 후반 이후에는 또 다시 신라와 대치하는 형세가 되면서 보루의 중요성은 그대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