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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체육

월평동산성

  • 종 목 : 기념물 제7호
  • 시 대 : 백제
  • 소 재 지 : 서구 월평동 산12-2 외
  • 지정일자 : 1989. 03. 18.

대전 분지의 갑천甲川을 따라 그 동안東岸을 남북 방향으로 뻗은 월평산지 능선은 전체 길이가 약 6.5㎞이다. 남쪽 끝은 서쪽으로 갑천을 사이에 두고 구봉산九鳳山 능선과 마주하고, 동쪽으로 유등천을 사이에 두고 보문산지의 남서 능선과 맞서고 있다. 월평동 산성은 이 월평산지의 북단 해발 표고 137m(비고 100m) 봉우리를 주봉으로 하는 능선 및 그 서쪽 계곡 사면을 이용하여 축조한 동고서저東高西低 형의 포곡식抱谷式 석축성이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745m로서 질현성迭峴城·적오산성赤鰲山城 등 대전 지역 분포 산성 가운데는 대형에 해당된다. 성벽의 축조 기법을 보면 입면 모양이 방형이 되게 다듬은 성 돌을 아래 위가 평행하게 쌓았다. 이와 동일한 기법은 501년에 축조된 부여 임천의 성흥산성聖興山城, 6세기 전반 538년 이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부여 사비나성泗羅城, 그리고 부소산성扶蘇山城 북문지 남측의 성벽 등이 알려져 있어, 대략 6세기 이후 등장한 전형적인 백제의 축성법이라 할 수 있다.

2001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 축조 이전에 고구려가 이 일대를 점유했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으며, 1994~1995년에 걸쳐 이 성과 남쪽으로 이어진 동일 능선 상에 위치한 월평정수장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 말~6세기 전반경에는 고구려에 이어 백제가 탈환한 사실도 확인된 바 있다.

이 성은 이처럼 백제와 고구려의 공방이 치열했던 곳을 백제가 안정적으로 확보한 사비기 이후에 축조한 것이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와 기와편 등이 다수 수습되었는데, 기와의 등무늬는 평행선平行線 문·격자문格子文·무문無文 등이 있으며, 갈대를 엮어 만든 발 모양의 염상통보簾狀桶褓를 써서 만든 기와편이 다수 확인되었다. 염상통보는 사정성沙井城과 흑석동산성 동쪽 산록에 위치한 ‘승상골’ 와요지 등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서 백제 기와 제작 기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월평산성의 남쪽 1.1㎞ 지점의 표고 190m ‘마봉재’와 3.4㎞ 지점의 표고 207m ‘도솔산兜率山’ 봉우리에는 각각 보루堡壘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