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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 지정종목 :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34호(1992년 10월 28일)
  • 시대 : 조선시대
  • 면적 : 1동/안채(155.2㎡), 행랑채 - 정면7칸,측면 1칸
가수원을 지나 흑석동으로 가는 도로와 호남선철도가 만나는 건널목 직전 우측의 고리골 마을에 위치한다. 이 고택은 조선 인조대에 한성부 서윤을 지낸 윤흡의 장손자 윤섬때인 약 300여년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ㄷ자형 평면으로 된 안채의 오른쪽 끝에 다시 ㄴ자형 행랑채를 붙여서 전체적으로는 튼 ㅁ자형의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안채에는 ‘영사당(永思堂)’ 이란 현판이 걸린 넓은 대청의 좌우편에 안방과 웃방, 부엌, 건넌방 등이 드려져 있다. 행랑채는 측면 1칸에 전체 7칸 규모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문이 있는 동측에는 담장이 있고, 남측의 정면에서는 담 없이 하방벽으로 담을 대신한다. 안마당쪽으로 1자 반 폭의 쪽마루가 길게 행랑채를 따라 놓이고 제일 마지막 칸은 아궁이 부엌으로 사용한다.

이 고택은 뒷날의 잦은 개보수로 본래보다 상당히 축소되어 비교적 안채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안채와 행랑채가 이어진 부분에 솟을대문을 두어 마치 집의 측면으로 출입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본래는 안채의 맞은편에 사랑채가 있었고 그 앞으로 삼문이 나있었다 한다.

고택 뒤로는 구봉산에서 비롯한 야산이 감싸고 있으며, 이 야산 기슭에 윤흡의 묘가 위치한다. 이곳은 본래 5형제 가운데 둘째 형인 윤황이 골라 잡은 자리였다. 그런데 넷째인 동생 윤흡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묘를 썼다고 전한다. 묘에는 각각 한쌍씩의 동자석과 망주석, 문인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동자석은 5년전 도굴과 함께 도난당하여 새로 제작한 것이다. 묘비는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조카인 윤문거가 써서 1665년에 세웠다. 바로 아래에는 맏아들인 윤운거의 묘가 있다.

현재 고택에는 윤흡의 13대손인 윤여상(66세)이 살며 관리하고 있다. 고택 앞 마을 입구에는 1990년에 세운 ‘통정대부행한성부서윤파평윤공신도비(通政大夫行漢城府庶尹坡平尹公神道碑)’란 신도비가 있다. 1949년 정인보가 비문을 지었다.
오시는 길
  •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괴곡동 고릿골길 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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