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온의 묘
-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제 16호(1989년 03월 18일)
- 시대 : 조선시대
김여온(1550-1592)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석은(石隱)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금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의 후예이며 임진왜란때 의병의 선봉장을 지낸 순국지사이다. 1550년에 공주 계룡면 노포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커서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고, 재주가 많았는데 충효를 행동의 기본으로 삼았다.
의영고 주부(義盈庫 主簿)를 거쳐 한림원 한림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을 맞았다. 이에 중봉 조헌(重峰 趙憲), 양응춘(楊應春), 정자방(鄭自防)등과 함께 의병의 선봉장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청주에서 왜병을 물리친 김여온은 금산으로 진격하여 연곤평에서 전투하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선조25)8월 18일의 일이다.
이로부터 300년이 지난 임진년(1892)에 공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호조참의 (戶曹參議)를 증직하였다. 이 해에 자손들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 시신없이 공의 혼을 불러 초혼장(招魂葬)으로 이곳에 장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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